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끼는 경험을 해봤나요? 피로감이 들면서 피부가 창백해지지는 않았나요? 전형적인 빈혈의 증상입니다. 신체에 혈액이 순환하는 반려견에게도 빈혈은 나타날 수 있는데요, 어떤 빈혈은 반려견을 호흡곤란 상태까지 몰아간다고 합니다. 또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비롯해 발이나 피부가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해요. 오늘 ‘다시 쓰는 개 사전’에서는 반려견에게 발생하는 빈혈의 종류와 원인, 치료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려견의 빈혈, 왜 발생하는 건가요?
빈혈은 몸 속 혈액 중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감소한 상태를 뜻합니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로, 신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산소를 싣고 몸 여기저기에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적혈구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헤모글로빈의 농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신체 곳곳에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이 줄어들면서 각 조직에서 산소 부족 증상이 나타나는 게 빈혈이 발생하는 과정입니다.
대표적인 빈혈 증상은 무기력증과 피부가 창백해 보이는 청색증입니다. 건강한 반려견의 잇몸, 귓바퀴, 눈의 결막, 복부 등의 피부는 대개 핑크빛을 보입니다. 하지만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반려견의 피부 상태는 푸른빛을 띠는 흰색에 가까워지죠. 또한 적혈구가 파괴된 반려견의 소변은 갈색으로 변하니 기억해 주세요.
흔히 빈혈은 ‘재생성 빈혈’과 ‘비재생성 빈혈’로 나뉩니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만들어지는데, 골수에서의 적혈구 생산은 순조로우나 빈혈이 생기는 경우를 재생성 빈혈이라고 하고, 골수에서 적혈구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빈혈이 발생하는 것을 비재생성 빈혈이라 합니다.
재생성 빈혈의 원인은 출산, 교통사고 등 외력이나 기생충 감염 등에 의한 혈액의 손실과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적혈구가 파괴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비재생성 빈혈은 만성질환이나, 골수암, 신장 질환 등에 의해 서서히 발생하게 됩니다.
“양파는 개가 먹으면 안 된다던데…” 이래서?
재생성 빈혈 중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이란 질병이 있습니다. 용혈이란 적혈구의 막이 파괴되면서 헤모글로빈이 혈구 밖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종합하면 반려견의 면역체계가 자신의 적혈구를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등과 같은 외부물질로 잘못 인식해 공격한 나머지, 적혈구가 파괴되면서 빈혈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의 가장 큰 무서운 점은 증상이 갑작스레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많은 수의 적혈구가 한꺼번에 손상되는 반면, 골수에서 성숙한 적혈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약 5일이 걸립니다. 부족한 적혈구가 곧바로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죠. 특히 무기력증, 구토, 청색증과 같은 빈혈의 주된 증상과 함께 눈의 점막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소변에 피가 함께 섞여서 나올 수 있으니 빈혈 증상을 보이는 반려견의 소변도 잘 살펴주세요.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이와 같은 증상을 설명하면 수의사는 현미경을 통한 혈액검사와 혈액화학 검사 등을 통해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재생성 빈혈은 반려견의 중독을 유발하는 사람의 약품이나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사람의 소염제, 그리고 양파, 마늘과 같은 음식들입니다. ‘반려견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 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양파와 마늘에는 ‘술폭시드’(Sulfoxide)와 ‘아황화물’(Disulfides)이 들어있는데, 이 물질들이 반려견의 적혈구를 공격하면서 빈혈이 발생하죠.
반려견의 빈혈에 대처하고 치료하는 방법
재생성 빈혈의 경우 대부분 응급 상황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가장 필요한 응급처치부터 먼저 실시합니다. 산소 공급이 부족해 청색증을 보인다면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수혈을 해 줍니다. 재생성 빈혈은 사고로 발생한 출혈, 잘못된 음식 등을 먹어서 일시적으로 적혈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만큼 산소 공급과 수혈 등의 대처만으로도 반려견의 상태가 회복될 수 있죠.
다만 여기서도 예외는 있습니다. 앞서 언급해드린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에 걸린 사례인데요.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은 면역체계에서 이상 반응을 보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적혈구가 부족해지는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 진단을 받은 반려견에게는 산소 공급과 수혈 조치 이후 동물병원에서 면역억제제를 처방해 정기적으로 복용하게 합니다.
수혈을 받는 과정에서도 한 가지 검사가 필요합니다. 바로 ‘수혈교차반응’인데요. 반려견에게도 혈액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려견의 혈액형은 개 적혈구 항원(DEA Dog Erythrocyte Antigen)으로 분류합니다. DEA 뒤에 숫자를 붙여 혈액형을 표현합니다. 반려견의 혈액형은 DEA 1-, 1.1, 1.2, 1.3, 3, 4, 5, 7 형이 있으며 이중 60% 정도가 DEA1.1과 1.2라고 합니다.
이처럼 혈액형이 항원으로 분류되는 만큼 혈액형이 다른 반려견에게 수혈을 할 경우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수혈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서로 혈액형이 다른 반려견끼리 한차례까지는 부작용이 거의 없이 수혈할 수 있지만, 한번 수혈이 된 뒤에는 혈액에 항체가 형성돼 두 번째 수혈부터는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죠. 다만 DEA 1-는 음성 혈액형으로 DEA 1.1, 1.2와 같은 양성 혈액형에 지속적으로 수혈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반대로 DEA 1.1, 1.2와 같은 양성 혈액형 반려견이 DEA 1-와 같은 음성 혈액형 반려견에게 수혈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종류가 많은 반려견의 혈액형을 애써 외워두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동물병원에서는 항상 수혈에 앞서 앞서 말씀드린 수혈교차반응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이죠. 수혈할 혈액과 수혈받는 동물의 혈액을 서로 섞어서 거부반응이 나오지 않는지 확인한 뒤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수혈을 할 수 있습니다.
비재생성 빈혈에 해당하는 반려견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산소와 혈액을 수혈해 주면서 적혈구가 잘 생성되지 않는 원인을 찾아서 해당 질병을 치료해 줍니다. 다만 비재생성 빈혈은 만성 신부전, 갑상선 기능 저하증, 종양 등 만성적이고 쉽게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이 원인인 만큼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 건강한 생활을 하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정기검진으로 평소 이상 증상이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 주세요. 당신의 세심한 관심이 반려견의 빈혈을 방지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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